
은행이 코인 회사와 손을 잡는다고 해서 코인 가격이 오를까요? 지난 10월, 우리은행·K뱅크·교보증권·전북은행이 리플과 한 무대에 앉았습니다. 전북은행은 12월부터 베트남·필리핀 송금을 리플로 가동하겠다는 구체적 일정까지 꺼냈습니다. 16년째 장사를 하며 겉으로 보이는 규모와 실제로 남는 이익이 얼마나 다른지 몸으로 겪어온 저는, 이 소식을 들으면서 계약과 가격 사이의 거리를 먼저 재봤습니다.
전북은행이 리플페이먼츠를 택한 진짜 이유가 뭘까요?
지방 소멸이라는 말을 뉴스에서만 보셨나요? 저는 장사를 시작한 20대 후반부터 상권이 쪼그라드는 걸 직접 목격했습니다. 전북은행이 외국인 고객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사실 같은 맥락입니다. 전북 지역은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어 지역 내 신규 고객 확보가 갈수록 어려운 구조입니다.
전북은행(JB금융그룹)은 국내 외국인 대출 시장에서 점유율 70% 안팎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16년에 타 은행보다 앞서 외국인 대상 신용 대출 상품을 내놨고, 외국인 송금 핀테크 기업의 2대 주주이기도 합니다. 국내 외국인 근로자가 본국으로 보내는 돈은 연간 35억 달러(약 4조 8천억 원)를 넘고, 그중 베트남으로 향하는 금액만 10억 달러 이상입니다. 4년 사이 네 배로 불어난 수치입니다(출처: 한국은행).
이번 XRP 서울에서 전북은행이 꺼낸 핵심 단어는 "예측 가능성"이었습니다. 리플페이먼츠(Ripple Payments)란 리플이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국경 간 송금 소프트웨어 솔루션으로, 기존 SWIFT 방식보다 정산 속도가 빠르고 수수료가 낮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현재 전북은행이 외국인 고객에게 받는 전신료는 건당 약 8,000원 수준인데, 이걸 리플 네트워크로 대체하겠다는 그림입니다. 12월 셋째 주를 목표로 베트남·필리핀 개인 해외 송금 서비스를 가동할 계획이며, 디지털 자산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 상반기에는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 송금까지 확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미국 달러 등 법정화폐에 가치를 고정시킨 디지털 자산으로, 가격 변동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은행이 선호하는 결제 수단입니다.
- 전북은행, 2025년 8월 리플페이먼츠 상용 계약 체결
- 12월 셋째 주 목표: 베트남·필리핀 개인 해외 송금 가동
- 국내 외국인 대출 시장 점유율 약 70%, 외국인 송금 핀테크 2대 주주
- 디지털 자산 기본법 통과 시 내년 상반기 스테이블 코인 송금 계획
K뱅크와 교보생명, 리플을 쓰는 목적이 같을까요?
저는 장사하면서 거래처를 한 곳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습니다. K뱅크를 보면서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K뱅크는 2021년 말 기준 전체 수신의 약 50%가 업비트 예치금이었습니다. 은행 예금 절반이 암호화폐 거래소 한 곳에서 들어온 구조였습니다. 올해 3월 코스피 상장에 성공했고, XRP 서울 행사 하루 전인 10월 2일에는 업비트와 1년 연장 계약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업비트 의존도는 10%대로 낮아졌지만, 업비트가 네이버 파이낸셜과 빅딜을 진행한 이후 두 회사의 관계는 언제든 재편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K뱅크는 올해 4월 리플과 송금 실험 계약을 맺었습니다. 1차 테스트에서는 결제 전용 테스트 앱으로 송금 과정을 점검했고, 현재 진행 중인 2차에서는 K뱅크 내부 시스템과 리플 XRPL(XRP Ledger)을 가상으로 연동해 여러 국가에 온체인(on-chain) 송금을 실제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XRPL이란 리플이 운영하는 분산 원장 기술 기반의 블록체인 네트워크로, 거래 처리 속도가 빠르고 수수료가 낮은 것이 핵심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인터넷 은행이 업비트 없이 살아남을 방법을 이렇게 조용히 준비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교보생명은 송금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2024년 9월 리플의 국내 첫 금융 파트너가 됐고, 올해 4월에는 국채 토크나이제이션(tokenization)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토크나이제이션이란 채권이나 주식 같은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위에서 디지털 토큰으로 발행하는 기술로, 정산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교보생명이 사용하는 솔루션은 리플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플랫폼인 리플 커서(Ripple Corda)입니다. 여기에는 SBI홀딩스라는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SBI홀딩스는 2016년 리플의 아시아 파트너 법인을 설립한 곳이고, 교보생명의 2대 주주이기도 합니다. 2025년에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보유하던 교보생명 지분 9%를 약 4천억 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플과 교보생명, SBI가 서로 지분과 사업으로 얽혀 있다는 점은 제가 조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입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은행 계약이 늘어나면 XRP 가격도 오를까요?
장사에서도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고 반드시 이익이 많이 남는 건 아닙니다. 매출에서 비용을 뺀 뒤 실제로 무엇이 남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금융 시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번 XRP 서울 행사는 작년보다 인파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XRP 가격은 작년 역대 최고점 대비 절반 수준이었는데도 사람이 더 많이 모였습니다. 가격이 아닌 다른 이유로 모인 사람들이 늘었다는 뜻인데, 저는 그게 꼭 긍정 신호라고만 보지 않습니다. 기대가 커질수록 실망도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은행들이 사용하는 것이 XRP 코인 자체가 아니라 리플이라는 회사의 소프트웨어라는 점입니다. 전북은행은 리플페이먼츠, K뱅크는 밸리셰이드(Vallyd) 지갑, 교보생명은 리플 커서를 씁니다. 이 서비스들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우선 리플 법인의 몫입니다. XRP 가격이 오르려면 이 네트워크를 통해 XRP가 실제로 교환 매개로 얼마나 사용되느냐, 즉 ODL(On-Demand Liquidity) 활용 규모가 커져야 합니다. ODL이란 리플 네트워크에서 XRP를 중간 유동성 수단으로 활용해 실시간으로 국가 간 환전과 송금을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계약 체결과 ODL 실사용량 사이에는 시간과 조건이 필요합니다.
한편 에버넌스(Evennos)는 10월 7일 합병을 마치고 8일 나스닥에 XRPN 티커로 상장할 예정입니다. 에버넌스는 약 4억 개 이상의 XRP를 보유한 XRP 트레저리(treasury) 기업으로, 비트코인의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이더리움의 비트마인과 유사한 모델입니다. 상장사 중 역대 최대 규모의 XRP 보유량입니다. CEO는 리플 출신으로, SBI홀딩스 역시 에버넌스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 상장이 XRP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지켜봐야 하는 변수입니다.
- 은행이 사용하는 건 리플 소프트웨어 — XRP 코인 직접 매입 발표는 없음
- XRP 가격과 직결되는 건 ODL 실사용량 확대 여부
- 에버넌스, 나스닥 XRPN 티커로 상장 — 4억 개 이상 XRP 보유
- 2019년 우리은행·신한은행이 리플에서 손을 뗀 이유도 XRP 가격 변동성
자주 묻는 질문
Q. 전북은행이 리플을 쓰면 XRP를 직접 사는 건가요?
A. 전북은행이 계약한 것은 리플페이먼츠라는 송금 소프트웨어 서비스입니다. 현재까지 XRP 코인을 직접 매입하겠다는 발표는 없습니다. 리플페이먼츠 안에서 XRP가 환전 매개로 쓰이는지 여부는 운영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Q. K뱅크가 리플 실험을 하는 이유가 업비트 때문인가요?
A. 직접적인 공식 발표는 없지만, K뱅크의 업비트 수신 의존도가 한때 50%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익 구조 다각화 필요성은 분명합니다. 리플과의 해외 송금 실험은 업비트 의존도를 낮추면서 새 수익원을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Q.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나오면 XRP와 어떤 관계가 생기나요?
A.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의 법적 근거가 되는 디지털 자산 기본법은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법이 통과되면 은행들은 발행된 스테이블 코인을 어느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유통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전북은행이 리플 네트워크를 선점하고 있다면 XRPL이 유통 경로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선 확정된 내용이 없습니다.
Q. 에버넌스 나스닥 상장이 XRP 투자자에게 의미 있는 이유가 뭔가요?
A. 에버넌스는 4억 개 이상의 XRP를 보유한 채 나스닥에 상장됩니다. 주식을 사는 것이 간접적으로 XRP를 보유하는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기관 투자자나 XRP 직접 거래가 어려운 투자자에게 접근 경로가 하나 더 생기는 것입니다. 다만 주가와 XRP 가격이 항상 같이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결론
몸이 망가지도록 일하다가 운동을 시작하면서 저는 익숙한 방식만 고집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전북은행, K뱅크, 교보생명이 리플과 손을 잡은 것도 결국 같은 이유에서 출발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익숙한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 내용을 정리하면서 느낀 건, 리플의 한국 내 파트너십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이지만 그것이 곧 XRP 가격 상승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행사에 사람이 많이 몰렸다는 사실, 금융사가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 이것만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면 비용을 놓치기 쉽습니다. 장사에서 배운 기준 그대로입니다. 가능성은 배우되, 생활을 흔들 만큼 확신하지 않는 것이 제가 경험으로 얻은 원칙입니다.
ODL 실사용량 확대, 디지털 자산 기본법 통과, 에버넌스 상장 이후 기관 수요 변화. 이 세 가지를 실제 숫자로 확인해 나가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