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리어리티 법안이 상원 절차 표결에서 49대 50으로 무산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솔직히 좀 허탈했습니다. 오를 것 같다고 생각했던 코인들을 손에 쥔 채로 뉴스를 봤던 날이라 더 그랬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법안 하나가 무산됐다고 해서 미국의 크립토 제도화 흐름 전체가 끊긴 건 아니라는 게 점점 더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클리어리티 법안 무산, 제도화의 끝이 아닌 순서 변경
제가 코인에 직접 투자하면서 규제 뉴스에 일희일비했던 때가 꽤 있었습니다. SEC가 어느 코인을 증권으로 본다고 하면 포트폴리오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경험 때문인지, 이번 클리어리티 법안 무산 소식도 처음엔 꽤 무겁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분석해 봤습니다. 클리어리티 법안은 디지털 자산이 증권인지 상품인지를 연방 차원에서 구분 짓는 법안입니다. 쉽게 말해, 특정 코인을 발행한 회사가 SEC의 갑작스러운 '이거 증권이야' 통보에 사업이 뒤집히는 상황을 막아줄 수 있는 안전망이었습니다. 리플이 수년 동안 SEC 소송에 휘말리며 침체기를 겪었던 게 그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법안이 불발된 것은 사실이지만, 제도화 자체가 멈춘 건 아닙니다. 달라진 건 순서입니다. 원래 흐름대로라면 연방 입법이 먼저 이루어지고, 이후 SEC와 CFTC 같은 금융 규제 기관이 그 틀 안에서 움직이는 구조였을 겁니다. 지금은 반대입니다. SEC와 CFTC가 먼저 제 갈 수 있는 길을 최대한 닦고, 사후에 입법이 따라오는 형태로 바뀐 겁니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트랙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레귤레이션 크립토 에셋(Regulation CA)으로, 암호화폐의 발행과 자금 조달 방식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기존 주식 발행 규정인 하위 테스트(Howey Test)를 크립토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디지털 자산에 맞는 독립된 기준을 세우겠다는 방향입니다. 여기서 하위 테스트란 특정 자산이 증권인지 판단할 때 '투자 계약' 성립 여부를 따지는 미국 대법원 기준을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혁신 면제(Innovation Exemption)입니다. 전통 주식 같은 기존 금융 자산을 블록체인 위로 올려서 온체인(on-chain)에서 거래할 수 있게 하는 경로를 열어주는 것입니다. 온체인이란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서 직접 처리되는 모든 활동을 뜻합니다. 즉, SEC가 크립토를 전통 금융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전통 금융을 블록체인 위로 올리는 두 방향을 모두 추진하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이 흐름을 보면서 느낀 건, 규제가 투자자에게 반드시 나쁜 신호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불확실성이 줄어든다는 건 기관 자금이 더 편하게 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이후 기관 자본 유입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도화 진전이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셈입니다(출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스테이블코인과 RWA, 지금 봐야 할 코인의 기준
클리어리티 법안이 막혔다고 실망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이 이미 통과됐다는 데 더 주목합니다. 지니어스 법안은 지급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연방 차원의 규제 체계를 확립한 법안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1달러처럼 법정화폐에 가치를 고정(페깅, pegging)한 디지털 자산으로, 발행사는 동등한 가치의 현금이나 미국 국채 등 준비 자산을 보유해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까지 마치며 이 부분의 불확실성은 사실상 해소됐습니다.
이게 클리어리티 법안과 무슨 관계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연결 고리를 파악하고 나서야 전체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구조가 꽤 탄탄합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온체인 위의 디지털 달러입니다. 이 돈으로 뭔가를 사야 의미가 생깁니다. 그 '뭔가'가 바로 RWA(Real World Asset), 즉 실물 자산을 토큰화한 상품입니다. 국채, 주식, 펀드, 부동산, 금 같은 자산을 블록체인 위에 올려 토큰 형태로 거래하는 것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될수록 미국 국채 매수 수요가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실제로 2025년 기준 스테이블코인 시가 총액은 약 3,000억 달러 수준으로, 전 세계 국채 수요처로서 무시할 수 없는 규모가 됐습니다.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가 5.5%를 넘어서며 200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배경에는 기존 수요 감소가 있는데, 스테이블코인이 그 대안적 수요처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가 이 생태계를 적극 육성할 유인이 충분합니다(출처: 미국 재무부(U.S. Department of the Treasury)).
이 구조가 완성되면 클리어리티 법안의 통과 가능성도 자연스럽게 높아집니다.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할 RWA 상품이 늘어날수록, 그 거래를 법적으로 뒷받침할 틀이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법안 무산이 일시적 지연이라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어떤 코인을 봐야 할까요?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예전에는 과거에 크게 올랐거나 이름값이 있는 코인 위주로 관심을 가졌는데, 그 기준이 지금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온체인 금융 생태계의 실제 구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먼저 봅니다. 제가 지금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중요하게 보는 분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핵심 기초 자산: 비트코인, 이더리움처럼 온체인 금융이 커질수록 체인 자체의 가치가 동반 성장하는 구조를 가진 자산
- 금융 인프라: 솔라나처럼 빠른 처리 속도와 낮은 수수료로 스테이블코인·RWA 거래 인프라로 각광받는 레이어1 네트워크
- 데이터 인프라·오라클: 체인링크처럼 체인 간 데이터 연결, 준비 자산 증명, 기관 데이터 공급 등 공용 인프라 역할을 하는 프로젝트
- RWA·디파이 거래 애플리케이션: 유니스왑, 하이퍼리퀴드처럼 실제 거래량과 수익 지표로 밸류에이션을 측정할 수 있는 탈중앙화 거래소
- 규제 친화적 결제·발행 네트워크: 기관 결제나 자산 발행에 특화된 네트워크로, 제도권 편입과 직결된 프로젝트
한 가지 더 챙겨봐야 할 것은 토큰 가치 연결 구조입니다. 프로젝트가 아무리 잘 성장해도, 그 성장이 네이티브 토큰 가격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의미가 줄어듭니다. 바이백(buyback)이나 소각(burn) 같은 장치를 통해 토큰 보유자에게 가치가 귀속되는 구조인지를 함께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직접 여러 프로젝트를 뜯어보면서 느낀 건, 이 연결 고리가 있는 코인과 없는 코인의 중장기 퍼포먼스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클리어리티 법안이 무산됐는데 크립토 시장에 앞으로도 규제 리스크가 계속되는 건가요?
A. 법안 무산이 규제 리스크의 증가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SEC와 CFTC가 기관 권한 내에서 제도화를 계속 추진하고 있어 불확실성은 서서히 줄어드는 방향입니다. 다만 입법 공백 기간 동안 법적 회색지대가 남아 있는 건 사실이므로, 단기 변동성은 각오할 필요가 있습니다.
Q. 지니어스 법안이 통과됐다는데 스테이블코인 관련 코인을 지금 사도 되나요?
A. 지니어스 법안 통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운영 기준이 연방 법제화됐다는 건 긍정적 요인입니다. 하지만 특정 코인의 매수 타이밍은 가격 위치와 시장 사이클을 함께 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법안이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과, 지금 당장 최적의 진입 시점이라는 것은 별개입니다.
Q. RWA 코인이 뭔가요? 어떤 걸 보면 되나요?
A. RWA(Real World Asset) 코인은 국채, 주식, 부동산, 금 같은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위에 토큰화해 거래할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들과 연관된 자산입니다. 단순히 'RWA 테마'라는 이름표보다는, 해당 프로젝트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자산을 온체인으로 올리고 있고 거래량이 늘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Q. 클리어리티 법안이 올해 안에 통과될 가능성이 있나요?
A. 중간 선거 전 통과는 사실상 어렵게 됐습니다. 다만 레임덕 세션, 즉 새 의회가 구성되기 전 현 회기 마지막 구간인 내년 1월 3일 이전에 속전속결로 통과를 시도할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49대 50으로 불발된 데다 찬성 진영에서 전략적으로 반대표를 던진 의원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상정 자체는 열려 있습니다.
결론
제가 이번 클리어리티 법안 무산 사태를 지켜보면서 가장 크게 바뀐 생각은, 규제 뉴스를 단기 가격 신호로만 읽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법안 하나가 막혔다고 포트폴리오를 뒤흔들기보다, 큰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먼저 보는 게 훨씬 유용합니다. 지니어스 법안으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의 첫 기둥이 세워졌고, SEC는 두 트랙으로 온체인 금융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좋은 산업 흐름에 있는지, 그 안에서 해당 프로젝트가 실제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성장이 토큰 가치로 이어지는 구조인지,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코인을 선별하는 게 제 전략입니다. 한때 유명했던 이름값보다, 지금 실제로 역할이 있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공부하는 쪽이 훨씬 낫다는 걸 직접 투자하면서 체감했습니다.